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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개발기획 일지

개발자 없는 회사에서 웹 기획자(PM)로 일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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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없는 회사에서 PM 이 되는 것은 뿌연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한동안 나는 어드민 쪽에서 업무 개선을 위한 개발 기획 쪽에만 집중하며 업무를 하다가 

회사 사이트 속도가 무척 저하되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이리저리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서버나 DBA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뜩이나 전문 개발 인력이 없는 우리 회사에

또 다시 서버 쪽의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을 마주하게 되며 좌절했었다.

의외로 (꽤 많이) 의지하던 개발자님도 이 부분을 잘 모른다는 사실에 우왕좌왕 하기도 했다.

 

어드민 개선이 결국 업무 개선을 위한 것인데,

속도가 느린 순간 다른 기능들은 다 후순위로 밀리기 때문에 무조건 속도 개선을 일순위로 올릴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이제서야 개발 쪽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수월해지기 시작했는데,

또 다시 전혀 모르는 세계로 들어가는 건 꽤나 스트레스였다. 

매일이 안개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느낌이었는데, 그 무언가가 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자기가 모르는게 뭔지조차 모르는게 최악의 상황인데, 딱 그 상황이었다.

서버? DB? 웹호스팅? FTP? 전혀 알 수 없어서 계속해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용어공부와 리서칭을 하며 개념을 넓혀나갔고,

개발자 지인, DB 전문가 지인,  크몽 상담 등 전문가들과 대화를 하고,

또 실제로 DB 튜닝을 한 번 거치면서 일종의 '감'을 잡기 시작했다.

같은 문제를 놓고 여러 전문가들과 대화를 하면 각 분야에서 계속해서 말하는 부분이 있고,

또 일치하는 문제점도 발생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감을 잡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까지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1. 모두가 자신의 분야만 안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마케터는 마케팅을,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안다.

개발 쪽 역시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 대해서만 잘 안다. 

 

비전공자는 '개발자' 라고 하면 컴퓨터도 엄청 잘 알고, 인터넷, 개발에 관련한 모든 걸 알거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프론트개발자인지, 백엔트 개발자인지, 웹 개발자인지, 앱 개발자인지, 다루는 언어는 뭔지, 어떤 업무를 했었는지, 경력은 얼마나 되는지.. 이 모든 것에 따라서 그들의 지식과 전문 분야도 상이하다.

 

2. 각 영역과 업무를 통합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의외로 잘 없고 구하기 어렵다.

우리 같은 작은 기업에는 대체로 개발자나 DBA, 엔지니어가 없다.

웹 사이트나 앱을 운영하고 있다면 개발자만 필요하면 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서비스의 규모가 증가하다 보면 반드시 필요한 개발을 해줄 수 있는 인력 외에

서버나 DB 쪽 문제에 대한 이슈가 발생하게 된다. 

그제서야 아 이 서비스가 운영되려면 서버가 있어야 하고, 운영하면서 쌓이는 자료는 DB 에 저장되고 있구나- 에 대해 

현실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그랬다)

 

3. 각 전문 인력을 연결할 구심점이 필요하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정말 궁금하지만,

우리 회사 같은 경우에는 이 구심점이 내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개발자 님과만 대화하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기획서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고민했지만,

이제는 우리 사이트가 서버 증설이 필요한지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고, 

DBA 와 대화하며 지금 우리 사이트의 문제가 뭔지 이해하려 하며,

앞으로 우리 사이트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청사진을 그려나가기도 한다.

 

 

4. 개발자가 없는 회사에서 웹 기획자로 일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마케터나 디자이너는 서로가 뭘 하는지 대략적으로 알고, 서로의 업무를 배우려고 하면 배울 수도 있지만

IT 분야는 서로 간 허들이 꽤 높고, 특히 비전문가는 이들이 뭘 보면서 일하고 뭘 하고 있는지 짐작이 안 간다.

개인적으로 나는 개발자나 DBA 가 대체 뭘 보고 어떤 식으로 일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너무너무 답답했는데,

(성격 상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건지도 모르지만.) 

공부를 하면서 점차적으로 그들이 왜 나뉘어져 있고, 왜 다른 곳을 보고, 대충 어떤 것을 하는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5. 많이 공부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는다.

일 잘하는 사람이 일을 많이 하게 되듯, 

남들보다 관심을 갖고 많이 공부하는 사람이 결국 그 일에 대한 주도권을 잡게 된다.

내가 우리 서비스에 대해 어떤 청사진을 그리던,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건 실행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내는 의견이 이전보다 더 영향력 있고, 실행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일에 대해 크게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나처럼 일에 대해 욕심 있는 사람에게는 무척 중요한 포인트다.

 

6. 뭘 공부해야 하냐면.

그래서 뭘 공부해야 할까.

내 생각에는 커리큘럼은 없다. 내가 공부한다고 해서 개발공부를 하거나 DB 전문가 만큼 공부를 할 수는 없다.

다만 대화하면서 나오는 용어들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또 그 용어들을 공부하면서 나오는 추가 개념들을 계속 이어서 공부한다.

그러면서 점점 아는 폭이 넓어지게 된다. 깊게 할 필요는 없다. 넓게 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별을 얻기 위해서는 세모도, 네모도, 원도 얻어야 나중에 그것들이 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공부한 것들이 작은 점으로 보이지만, 그것들이 이어져서 선이 되고,

선은 이어져서 세모, 네모가 되고 원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결국에는 별이라는 모양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점을 찍고 있다.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이미 선이 되기도 했고, 

아직도 그냥 의미 없는 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점을 찍다보면 언젠가 별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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